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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2 축의금 만 삼천원 1
글 도둑놈2010. 10. 2. 02:56
1.
예전에 블로깅 할 때 읽었던 축의금에 관한 글이다. 작가분이 이철환씨였구나.
그때 눈물을 질질 흘리며 봤던 기억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해남에 있다는 들꽃 서점 한 번 가봐야겠다.





2.

서울 쌍문동 "풀무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작가 이철환의

"축의금 만 삼천원"이란 글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

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왜 뛰어 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지 않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봉지를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수 없음을 마음 아파 해다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축의금 만 삼천원 만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뇌성마비로 몸이 많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나 있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수 백 명의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나에게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렇게 이야기 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그런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예전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 무심코 접한 글이다



당시 쪽팔림을 무릅쓰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다가 하늘을 보다가



지금 읽어도 눈물이 흐르는 가슴 따뜻하고 에리는 이야기



석민의 분유값을 위해 만 삼천원을 위해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친구와



해남에서 어린 아이를 들쳐 업고 올라온 아내



먼 길 떨어진 구두를 신고 온 아내의 눈동자에 담긴 친구의 모습


(지금은 해남에 사는 친구는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들꽃서점"을 하고 있고
이철환작가는 최근 아버지가 산동네에서 고물상을 하던 시절에 겪은
아름답고 눈믈겨웠던 실제 이야기를 담은 "행복한 고물상"이란 책을 냈습니다.)

Posted by 사천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