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이버. 한게임과 합병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었구나.
내가 그 시절(1998년말부터 2000년 무렵) 주식을 했다면 성공했을까 아니면 집안 말아먹었을까.
말아먹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지나간 세월 아쉬워해봤자 소용없지만, 과거를 경험삼아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자.
2.
김범수 NHN 공동대표
PC통신, 야망의 계절
"사설 BBS가 뭐지? 사람들이 그걸 사용하면서 돈을 낸다고?”91년초, 대학원생 김범수는 채팅, 게시판, 자료실 등을 갖춘 사설BBS를 운영하며 돈을 벌고있는 후배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또 돈을 낸다는 사실앞에 김범수는 경이로움을 넘어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것은 분명 새로운 세상이었다. 91년 당시는 모뎀을 이용해 PC통신을 하던 시절이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대학원생이었다. 공간의 제약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처음 접했던 그는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대학원 논문을 PC통신분야로 바꾸기까지 했다. 김범수가 PC통신과 인터넷에 입문하게 된 것은 사설 BBS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이것이 훗날 한게임 창업의 결정적인 밑거름이 된다. 대학원을 졸업한 김범수는 92년, 공채로 삼성SDS연구소에 입사, 엔지니어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김범수는 여기서 정확히 8년후 사업적 파트너가 되는 이해진(현 NHN 공동대표이사)을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둘은 삼성SDS 입사동기로 같은 개발자였다. 김범수가 한 일은 SW개발. 김범수의 운명은 그 유명한 삼성의 PC통신서비스, ‘유니텔’ 개발에 직접 참여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94년 삼성SDS는 PC통신사업진출을 선언, TFT 인력을 사내공모했다.
PC통신관련 대학원논문까지 썼던 김범수는 당연히 지원했다. 그는 94년부터 98년 퇴사전까지 유니텔의 프로그램개발에서부터 기획, 설계, 정보기획,유통 등 안해본 분야가 없을 정도로 유니텔의 모든 것을 담당했다.
개발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기획, 마케팅 등을 두루 담당하게 되면서 김범수는 사업가로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터득하게 된다. 그가 생각해낸 컨셉은 국내 최초로 클릭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전용에뮬레이터기반의 PC통신. 미국의 아메리카온라인(AOL)을 모델로 삼았다. 96년 1월 서비스를 개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후발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개시 2년여만에 하이텔을 제치고 1위 천리안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서는 등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5년여간 유니텔을 맡으면서 그는 PC통신에 관한한 전문가수준으로 올라섰다. 김범수는 자연스레 95년부터 등장한 인터넷을 접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인터넷에 눈을 뜨는 기회를 잡게된다
"다단계 판매를 아시나요”
"여보, 다단계판매를 나쁘게 생각지 말아요. 그냥 한번 들어봐요”97년께, 아내의 손에 이끌려 다단계판매회사의 교육장에 들어선 김범수는 이때부터 그만의 독특한 꿈을 만들어간다. 김 사장은 늘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스스로를 “아직도 꿈꾸는 자유인”이라고 표현할만큼 늘 꿈을 꾸며 살아간다. 이런 김범수 '꿈철학’의 근본은 1년간 빠져들었던 다단계판매에서 비롯된다. 그는 여기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된 꿈이 아닌, 아주 현실적인 꿈을 꾸기 시작한다. "10년후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김범수가 삼성SDS를 그만두고 홀로서기에 나선 것은 다단계판매회사에서의 ‘독특한 꿈꾸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단계판매에 빠져들면서 ‘10년후 삼성에서의 자신의 모습과 비전, 꿈’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된다.
"다단계판매를 알고부터 삼성에서 일하는 것자체가 우물안개구리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10년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니, 답이 안나왔죠. 전 그때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일종의 '일탈’이었다. 위기를 느낀 김범수는 98년 9월, 무작정 사표를 던졌다. 물론 생각해둔 사업 아이템은 있었다. 그가 생각한 사업모델은 97년께 유니텔서비스를 하며 겪은 한 이벤트가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했다.
"당시 유니텔에서 OX 퀴즈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이벤트형식인데 무려 7만여명이 참여하는 걸 보고 있는데, 속된 표현으로 사업적인 '필(Feel)’이 오더라구요”그리곤 게임을 생각해냈다. "그전까지 게임은 중독된 일부 사람들만이 이용했죠. 하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면 이런 게임을 불특정 다수인 대중들이 좋아할거란 확신이 들더라구요”
한게임의 비즈니스모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미 5년여간 유니텔을 운영하면서 PC통신 이용자의 습성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고,개발 및 고객만족을 위한 서비스 등 PC통신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두루 섭렵한 상태였다.
초창기 PC통신,인터넷 전문가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새로운 인터넷세상과 다단계판매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고민해온 김범수는 이미 홀로서기에 필요한 ‘워밍업’을 끝낸 준비된 CEO였다.
창업, 놀라운 생존본능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를 위해 다같이 승부를 걸어보자”99년봄, 삼성동 휘문고옆 허름한 10평 남짓한 사무실. 김범수는 5명의 직원을 모아놓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이보다 앞선 98년 2월, 교대근처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시작한지, 1년만의 일이었다. 유일한 수익사업인 개발대행으로는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다는 판단아래 게임개발에 총력전을 펴기로 마음먹었다.
6개월여간 온라인게임 개발에 목숨을 걸었다. 김범수의 사업모델은 아주 간결했다. 오프라인에서 검증된 대중적 게임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 바둑,장기부터 개발했다. 지뢰찾기, 테트리스, 고스톱 등도 준비했다.
사업 초창기인 98년초는 IMF직후라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집사람이 늘 사무실에서 밥을 지어 식솔들을 거두어야했다.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다보니, 하나둘 퇴사, 98년말에는 현 NHN 게임개발본부장을 맡고있는 문태식씨 딱 1명만 남았다.
이때부터 김범수의 사업적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98년말 대변신을 시도한다. “이렇게해서는 안되겠다 싶더라구요.뭔가 자금적인 측면의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했습니다”발상부터 독특했다. 그는 PC방사업에 직접 뛰어든다. 당시는 PC방사업이 막 뜨기직전. PC방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고, 개발한 게임을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
후일 한게임이 PC방을 중요한 마케팅기반으로 잡을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경험때문. 그는 98년 6월, 한양대앞에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PC방을 오픈했다. 김 사장은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로 그럴 것이 사채까지 끌어들여 당시로서는 큰 규모인 무려 2억4천만원을 투자, 시작했기 때문. 다행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범수는 PC방사업을 통해 어렵사리 사업밑천을 마련했다. 98년 11월, 자본금 5000만원으로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소문이 나면서 PC방 프로그램 프랜차이즈사업도 일부 병행했다. 이미 PC방관리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개발, 운영해온 탓에 프로그램을 달라고 손을 벌리는 PC방이 한두군데가 아니었기 때문.
하지만 PC방사업을 통해 엄청나게 돈을 벌었지만, 김범수는 5개월만에 PC방사업은 아내에게 맡기고, 게임개발에만 전념키로 결정했다. 99년봄이었다. 훗날 한게임의 대명사가 된 고스톱과 바둑 등이 이때부터 6개월간 집중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99년 12월 무료서비스를 시작했다. PC방을 활용한 마케팅방식은 그의 사업적 감각을 잘 보여주는 대목. 김 사장은 전국 PC방에 관리프로그램을 공짜로 깔아주는 대신 한게임을 PC방 컴퓨터의 초기화면에 띄우는 조건을 제시했다.
돈주고도 구하기 힘든 관리프로그램을 공짜로 깔아준다니 마다할 업주가 없었다. 그리고 삼성SDS 입사동기인 네이버 이해진 사장과도 공동마케팅에 나섰다. PC방 컴퓨터에 네이버프로그램을 깔아주면서 초기화면에 한게임 아이콘을 설정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네이버와의 공동마케팅은 후일 두 회사 합병에 중요한 단초가 된다.
한게임은 PC방 고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서비스개시 3개월만에 무료 회원수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대성공을 거둔다. 서비스개시 한달만인 2000년 1월, 한국기술투자로부터 1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3개월만에 회원수 100만명을 돌파한 것은 닷컴비즈니스에서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2000년 2월에는 200만명으로 늘어나는등 한게임은 외형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김범수 사장은 이 때부터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남다른 감각이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말 절박했죠. 당시는 기획과 영업,빌링파트의 인력은 전무하고,그저 서비스를 하는쪽 인력 20명이 고작이었거든요.비즈니스모델도 만들어야 하고, 유료화도 해야하는데 전혀 준비가 안돼 있었죠”외형이 급속도로 커지던 당시가 가장 절박한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술회한다. "그 때는 회원수가 하루에 10만명씩 늘때였습니다.회원수가 곧 1,000만명이 될게 뻔했거든요”
그는 회사가 성장하는데 본인이 걸림될이 될수도 있고,본인 때문에 회사가 망할수도 있다는 절박한 생각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단다. CEO를 물색했지만,이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2000년을 넘어서면서 벌써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범수의 승부수, 네이버컴와의 합병
"두 회사가 피를 섞으면 시너지가 엄청날 것입니다”
2000년 2월말, 강남역 인근 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던 김범수와 이해진. 둘은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네이버컴 합병문제를 놓고, 김정호(현 NHN 이사)씨의 얘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김씨는 삼성SDS를 거쳐 네이버컴에 근무하고 있던 인물로 누구보다도 두 사람을 잘알고 있었다. 한게임과 네이버컴의 합병은 그렇게 논의를 시작한지 한달만인 그해 4월께 공식 발표됐다. 가장 성공적인 M&A사례로 꼽히는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두 회사는 이미 PC방 공동마케팅을 하고 있었고, 한게임을 네이버사이트에 제공하는 대신,네이버컴은 장비를 한게임쪽에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었다. 둘은 합병을 통해 서로의 절박한 위기상황을 해결할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루에 10만명씩 회원수가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이를 소화할 준비가 안돼있는 한게임쪽의 절박한 위기의식,이미 10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수익모델부재와 다음, 야후, 라이코스에 늘 밀려 골머리를 앓고있던 네이버컴의 한계상황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
한게임은 네이버컴의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활용해 폭증하는 트래픽을 소화하면서 사업을 확장할수 있을 거라 판단했고, 네이버컴은 수익모델부재를 한게임을 통해 해결하고, 한게임의 엄청난 트래픽과 회원수를 이용, 포털사이트 만년 5위의 한계를 극복할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 입사동기이자 친구인 둘은 그렇게 한달만에 합병에 합의했다. 합병이후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잇따른 유료화의 성공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매출성장세로 이어졌다.
무한질주, NHN의 전성시대
"해진아, 성공했어”, "범수야 고맙다”
2001년 3월말, 공동대표인 이해진과 김범수는 손을 맞잡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고민끝에 한게임 유료서비스를 시작한지 한달만에 7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단숨에 네이버 배너광고매출을 앞지르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기 때문. 2000년 겨울, 당시의 인터넷 거품논쟁은 살을 에이는 추위보다 더 매서운 한파,그 자체였다.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었고, 벤처산업계는 금새라도 공멸의 나락에 떨어질 것같은 분위기였다.
한게임 유료화는 이런 상황과 맞물려 어쩔수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의 카드였다. "계속 적자였죠. 유료화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유료화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NHN은 2001년 6월,네이버 검색서비스 유료화를 개시,또한번 탄탄한 수익모델발굴에 성공한다.
합병이후 두번에 걸친 유료화성공으로 NHN은 2001년에 매출목표치(120억원)의 두배가 넘는 29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일부 서비스만 돈을 받는 프리미엄개념의 유료화를 도입한 탓에 이용자들의 반발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합병의 잠재력은 해가 바뀐 2002년,폭발했다. NHN은 지난해 무려 760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 250억원을 기록하며 수익모델부재,거품의 진원지로 꼽히던 닷컴기업의 무용론을 일거에 잠재우며 코스닥 황제주로 급부상했다.
NHN의 거칠것없는 질주는 올해 매출 1300억원,500억원규모의 영업이익을 자신할만큼 가히 폭발적이다. 코스닥을 대표하던 엔씨소프트,다음커뮤니케이션즈을 시가총액에서 차례로 제친지 벌써 오래전의 일일만큼 NHN은 이제 명실상부한 코스닥 대표주로 대접받고 있다.
김범수의 성공론, 그의 또다른 꿈
닷컴기업의 성공론에 대한 김범수 사장의 인식은 매우 유연하다. 핵심 키워드는 끊임없는 기술혁신론. "닷컴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진입장벽이 없습니다.이는 기회이자 위기를 뜻합니다.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살아남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죠”끊임없이 기술혁신을 해야하고,끝없이 변해야만 생존할수 있다는 것. 시장환경의 변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게 김 사장의 두번째 닷컴성공론의 화두다.
"닷컴비즈니스는 이제 몇 개업체가 자리를 잡은 상태이지만,이젠 새로운 의미의 확장경쟁이 시작됐다고 할수 있습니다.다음이 검색과 게임을 하고,네이버가 커뮤니티를 강화하듯 이젠 서로 겹치면서 경쟁하는 제 2라운드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죠”
어떻게 하면 성공할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그는 네가지 성공론을 제시한다. 판단력과 분석력,결단력과 추진력을 꼽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가지중 꼭 한두가지가 부족합니다.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네가지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김범수의 경영철학은 독특하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은 '배려’와 '스피드'. 애정어린 '배려’가 매우 중요하단다. 넉넉함이 한껏 묻어있는 '유연성’,그리고 많이 들어주고, 애정어린 배려만이 회사를 더욱 성장시킬수 있는 요인이라고 강조한다. 스피드 또한 그가 늘 강조하는 성장요소다. "빠른게 힘입니다.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스피드죠. 인터넷시장을 장악한 대기업이 없는 것도 스피드때문입니다”
신바람나는 일터,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과 일하며 비전을 만들어갈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 역시 그가 요즘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키워드다. 그는 조직원 스스로 판단하고,자율적으로 일할수 있도록 하는 '그림자 관리기법’을 강조한다.
개인의 창의력과 개발코드는 스스로 창출돼야 합니다. 이런 신바람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김범수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꾸느라 정신이 없다. 한창 그리는 꿈은 '글로벌’이다. 일본시장에 큰 비중을 두고,올 하반기에 중국에 진출한다.
하지만 김범수가 그리는 궁극적인 꿈은 '풍요로운 디지털라이프’. "NHN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웹에서 시작했지만,곧 TV,모바일쪽으로 연결될 것입니다.그리고 다양한 연령층이 연결돼 제각각 풍요로움을 누리는 그런 공간이 존재할 것입니다”
김범수가 그리는 궁극적인 꿈은 온라인에서 지구촌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 온라인올림픽 같은 세상이다. "게임은 언어가 필요없습니다. 게임은 오프라인의 스포츠와 유사합니다. 게임을 통해 온라인올림픽 같은 공간을 마련해볼 생각입니다”
그는 요즘 한참 온라인게임으로 한,중,을 잇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컨셉이 잡히면 아주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NHN 김범수 사장. 불과 5년이 채안되는 창업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써 세계 온라인게임시장의 미래와 닷컴비즈니스의 새로운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 인터넷산업계의 뉴리더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내가 본 김범수..이해진 NHN 공동대표
1992년 삼성SDS 연구소 동기로 입사하면서 김범수 사장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 인연은 2000년 7월 각자가 창업했던 회사인 네이버컴과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의 합병을 이뤄냈고, 현재 NHN의 공동대표라는 자리까지 10년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가끔 주위로부터 공동대표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김범수 사장과 함께 회사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되고 있다. 한 기업을 이끌고 가는 대표로서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김 사장만한 사람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고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
김범수 사장과 함께 2년 넘게 일하면서 서로가 한 번도 언성을 높여 본 적이 없다. 편안한 외모 그대로 침착하고 원만한 성격의 김 사장은 말로 내뱉기 전에 항상 먼저 깊게 생각하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모든 회의석상에서도 사장의 의견이 주는 무게감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실무자들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은 다음에야 자신의 말을 시작하는 편이다.
또한 김 사장은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재산으로 생각해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최대한 노력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한 회사의 말단 사원일 때도 그랬지만 성공한 NHN의 공동대표인 지금까지 항상 변함 없다.
어느 한 사람을 만나도 예의가 바르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김 사장에게는 적이 없다. 그런 그의 듬직한 성품 덕에 업계에서는 인터넷게임협회의 회장직까지 맡기고 있는 것이다.
김범수 사장은 사내에서도 새해가 되면 직원들에게 한 해를 시작하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사내 자유게시판에 본인의 개인적인 글을 올리는 등 항상 본인이 먼저 직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직원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사장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의 좌우명은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꿈'이라는 단어는 김 사장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꿈은 결코 허황하거나 막연하기만 한 꿈이 아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비즈니스 또한 어찌 보면 모두 꿈 같은 이야기들을 성공시켜낸 길이라 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고스톱을 치는 일, 누구나 서비스하고 있는 인터넷 게임에 프리미엄 유료서비스를 도입했던 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던 일이다. 하지만 한게임은 1500만명이라는 엄청난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게임사이트로 성장했고 게임 유료서비스 역시 이제 모든 인터넷 업체의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들 정도로 게임 업계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항상 꿈을 꿈으로 끝내지 않고, 꿈꾸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김 사장이 이제는 일본을 시작으로 전세계인들이 한게임을 통해 게임을 즐기는 꿈을 꾸고 있다. 벌써 일본에서는 게임포털 2위라는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항상 자신의 꿈을 열정으로 실현시켜낸 김 사장이 꾸고 있는 꿈이기에 꼭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출처 스카이벤처 www.skyventu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