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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08 임학규 - 백금정보통신
  2. 2013.07.08 윤승현 기사 1
工夫/인생공부2013. 7. 8. 17:31

1.

임학규 대표의 백금정보통신. 이 회사는 상장도 되어있나보다. 사이트도 아직 존재하고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2011년, 2012년 연속 적자였는데 2012년도에는 적자 폭이 커졌다.

 

정말 사업이란 모르는것이구나... 경영은 대단한 것이구나...

 

 

기사 제목은 "준비된 자에게 모험이란 없다"였다.

 

 

철저한 준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모험을 감행하다 실패하는 것이 모험을 시도하지 않고 실패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 인도를 처음 통일했던 마우리아 왕조의 재상(宰相) 카우틸랴의 말이다.

제국의 형성에 온힘을 다했던 그에게도 모험이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나보다. 모험은 '쓰라린 실패'라는 말을 등 뒤에 늘 달고 다니기 때문일 터. 하지만 임학규(36) 백금정보통신 대표의 생각은 좀 달랐다.

"준비하는 사람에게 모험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이룰수 있는 일에 단지 도전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백금정보통신은 차량용 레이저디텍터 전문제조업체다. 레이저디텍터란 차랑속도측정기를 탐지해 과속을 예방하고, 안개 소나기 철도 등을 미리 알려줘 운전자의 안정성을 제고하는 장비다. 백금정보통신은 이 분야에서 미국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시장에선 2위. 창업한지 7년째 연 매출액 500억원대의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앞으로 3년안에 매출액 1400억원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행운도 준비하는 자에게만 온다

그는 단순한 월급쟁이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91년 대학을 졸업하고 종합상사 SK글로벌(당시 ㈜선경)에 입사했다. 비즈니스맨으로서 뜻을 펼치기 위한 첫발이었다.

"다양한 비즈니스 아이템과 실무경험을 쌓기에는 종합상사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전 관리부서에서 기업경영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보는 행운까지 누렸죠."

많은 인맥과 거래선이 쌓여 갔다. 종합상사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첨병 역할을 하는 곳. 그 성격상 매출규모가 큰 품목위주로 하다보니 좋은 품질을 갖고 있음에도 다루지 못하는 품목이 많았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드디어 '레이저디텍터'를 접한다. 하지만 섣불리 뛰어들지 않았다.

"기술력이 담보되야 하는 품목인 만큼, 창업동지로 국내 최고의 엔지니어 두분을 모셨죠."

기술적 장벽을 구축하는데 자신이 생긴 그는 다음 단계의 준비를 진행했다. "많이 뛰어다니고 알아보면서 업계 현황 뿐 아니라, 3개년도분의 사업계획을 미리 세웠습니다. 그 덕분인지 설립 첫해부터 흑자를 냈지요."

착실한 준비에 더해 운까지 따랐다. 유력 경쟁자인 일본업체가 불황의 여파로 부도가 났고, 하청생산 구조를 갖고 있던 국내경쟁자들도 IMF체제 하에서 쓰러졌다. 반면 자체 생산체제를 갖고 있던 백금정보통신은 환율상승으로 수출에서 날개를 달았다. "남들에게 위기였던 IMF가 우리에겐 기회였어요. 운이 좋았죠. 흔히 말하는 '운칠기삼' 말입니다. 하지만 그 '기삼'에 공을 쏟지 않았으면 '운칠'은 따라주지 않았을 거에요."

또 다른 도전

이제 그는 레이저디텍터의 성공에 만족치 않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그에겐 모험이란 단어는 없다. 단지 성공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한 도전일 뿐이다.) "앞으로 3년안에 산업용 무전기의 매출비중을 레이저디텍터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 올릴 겁니다. 레이저디텍터에서 쌓인 기술력과 마케팅 채널을 잘 이용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습니다."

국내 및 해외업계의 판도변화를 잘 살핀 뒤 내린 결정이란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산기지도 지난해 중국으로 이전시켰다. "우리가 가진 핵심 역량을 집중시켜 월드베스트 제품을 만들어 공략한다면 반드시 승산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는 레이저디텍터에 이어 산업용무전기 분야에서도 역시 일본업체를 누르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 자신감은 단지 막연한 자신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사업가 체질

임대표는 인터뷰 내내 '천상 사업가 체질이군'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유쾌한 표정과 화술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젊은 대표임에도 나이많은 다른 임원들과도 일하는 게 그리 불편하지 않단다. 그럴법도 같았다. "저랑 얘기하는 사람이 왜 그런 얘기를 하는 지 한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뭐 별달리 불편할 것도 없더라구요."

지금이야 해외 주요 유통업체와 거래하고 있지만 사업 초창기엔 거래선 잡는데 무척 애먹었단다. 그의 유연함이나 사교성은 바이어와 관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 지금도 바이어를 접대할 때면 제가 분위기를 주도하지요."(웃음)

백금(百金). 좀 촌스럽다 싶은 회사이름도 다 이유가 있다. 오행설에 따른 임대표의 사주에 금이 많아, 아예 금이 한 백개쯤 있으면 사업이 잘 풀리거라고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전 정말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잘 살기 위해서도 있지만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독립운동가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관한 연구를 지원해주고 싶어요."

그는 장기 중국 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스가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다. 씩 웃는 웃음과 함께 돌아온 대답.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뭘. 명색이 보스가 그런 거 무서우면 사업할 생각 말아야죠."

Posted by 사천짜장
工夫/인생공부2013. 7. 8. 17:16

1.

윤승현. 그 때 이 사람의 성공담을 읽을 때에 뻥이 아닌가 싶었다. 사진도 기억난다. 굉장히 기름기 넘치는 외모이셨던 것 같다. 다음과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아래 옮긴 글만 나오고 더 이상의 기사나 관련 글이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것인가?

 

뻥이었나?

 

실패했나?

 

궁금하다. 하여튼 믿기지 않는 기사의 주인공이다(이었다?).

  

 

 

 

 

 

 

 

 

2.

 

승자들의 자산은 열정이다


"돈이 가는길에 미리 그물 친다" - 25세에 2천억 번 윤승현사장



‘25세에 시가총액 합산 2000억원이 넘는 4개 벤처기업의 대표이사.’

성악가를 꿈꾸던 25세의 젊은이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 없이 혼자 힘으로 이뤄낸 사업내용이다.


20대 벤처기업가 윤승현씨. 그가 현재 대주주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회사는 온라인 브랜드 컨설팅그룹인 ‘네임빌’, TV CF를 활용한 마케팅업체인‘WOW CF’, 세계적 오락네트워크를 갖춘 ‘아이팝콘’, 캐릭터 라이선스회사인 ‘죠이스퀘어’ 등. 모두 알짜배기로 소문난 회사들이다.

거기에다 외국관광객 부가세환급서비스업체인 코리아리펀드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밖에 지문인식 솔루션업체인 유니온커뮤니티, 여성포털사이트 뷰티나우 등 20여개 회사의 창업에 참여하거나 주요 주주로 등재돼 있다. ‘큰손’ 소리를 들을 법하다.


< 어떻게 이같은 부(富)를 형성했을까? >

물론 운은 그의 편이었다. 외환위기가 몰아닥친 98년 초 윤사장은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예술가를 꿈꾸면서도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학창시절 내내 벤처동아리와 경영학과 강의실을 기웃거리며 경영자로서의 자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용돈을 아껴가며 모은 돈 3800만원, 윤사장은 그 돈을 종자돈으로 삼았다. 증시가 바닥권을 헤맬 때 윤사장은 가진 돈 전부를 주식에 넣었다.

“만약 내가 망한다면 그때는 나라도 망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경제가 살아난다면 증권, 건설주가 오를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돈은 순식간에 11억8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첫 번째 투자치곤 운이 좋았던 셈이다.

그는 유달리 세상의 흐름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을 짐작하고 미리 가서 준비하는 게 그의 성공비결 중 하나였다고 그는 말한다.

코스닥열풍이 불던 98년말 그는 장외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자금난을 겪던 인츠닷컴과 인연을 맺었다.

이진성 사장과 직원들의 열기에 반해 11억원을 모두 털어 넣었다. 이 돈은 6개월 뒤 60억원이라는 거액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두번의 큰 성공을 바탕으로 벤처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옥션 이네트 시큐어소프트 등 유망기업에 잇달아 투자해 또 다시 큰 성공을 거뒀다.


< '투자자'로 성공한 윤사장은 다시 ‘기업가’로 변신했다. >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박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성, 컨설팅 업체인 베르디뱅크 등을 세워 기초를 다진 뒤 평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사업화하기 시작한 것.

운과 재능 이외에 또다른 어떤 자산이 그의 성공의 바탕을 이루고 있을까.

그는 '모신다'는 말을 좋아했다. 형으로 모시고 선배로 모시고…. 그는 직원들에게도 지시하기보다는 부탁하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항상 작은 곳에서 성공의 단초를 발견해 내려고 애쓴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중에서 작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려는 것.
그가 하는 사업이 대부분 그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미래를 준비중이다.

지주회사 형태의 여러 가지 포털사이트를 만들어 닷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그의 새로운 목표. 그는 “자신의 목표설정이 예술가적 기질에서 기인한다”고 풀이했다.

“사업도 예술과 비슷해요. 음악을 통해 키운 예술적 감각이 사업의 꿈을 더욱 크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전 꿈을 만들었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도와줄 사람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아마도 저를 도와준 사람들은 제 꿈과 비전을 인정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작은 성공이 결코 나의 몫만이 아닌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Posted by 사천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