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음 첫화면에 떴길래 읽어봤다.
대단한 사람이다.
부동산이 7개? 부럽다.
근데...
이렇게 살아야되는거냐.
2.
몇년전에 어느카페에 저의 이야기를 쓴적 있고 3~4년전 다음 UCC재테크대회때 제 이야기를 잠깐 쓴적 있었는데 사람들이 않믿는것 같았습니다.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것 같았습니다.작년말엔가도 저의 이야기를 쓴적 있는데 댓글중 30프로가 소설이라며 믿질 않았고 제마음이 상처를 받았던적도 있었습니다. 아고라에서 한 청년의 열심히 살아온 내용의 글을 읽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참을수가 없더군요.
그후로 사진을찍어서 공개했었는데 저도 용기내서 사진과 통장을 모아서 사진으로 올렸습니다.다행히도 월급88만원 받을때 80만원씩 저축한 내용이 통장에 찍혀 있고 MMF사용한 통장도 있어서 다행입니다.저 통장은 다 쓴통장 입니다.저의 발자취이고 역사의 흔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맨몸으로 나와서 만10년만인 지금은 제앞으로 부동산이 7개(등기권리증 7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머리가 좋지않는 저도 할수 있는데 머리 좋으신 여러분들도 충분히 가능할것이라 생각합니다.열심히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시면 3년후 혹은 10년후에는 더 풍요한 삶을 사실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제껏 10년 동안 모아온 105개의 저의 통장입니다.6~70개정도라 생각했는데 지금 세어보니 생각보다 많내요.
이것은 지금의 CMA 격인 투자신탁증권 MMF입니다.2002년12월18일날짜 보이시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2001년여름이나 2002년 여름에 시작한것으로 생각되는데 2002년12월18일날 개설했는가 봅니다.햇수로는 8년째 만7년이 되어갑니다.
88만원 받을때 80만원씩 어머니께 보내드렸습니다.어머니는 그돈을 저축하셨고 그돈은 약3년뒤 3000만원의 종잣돈이 되었습니다.(잠 자리는 제공이 되었고 도시락 쌓가지고 다녔기에 가능했고 점심값 10만원을 보태서 한달 18만원 가지고 생활했습니다.그래도 돈이 남았습니다.그때 공중전화비가 30원이였고 공중전화비로 계산해보니 그때돈 18만원은 지금돈 42만원 값어치와 같내요.)
이제껏 모아온 105개의 나의 통장 나의 고통과 눈물을 함께해온 나의 친구~~~
저의 고통과 눈물의 10년세월을 함께한 105개의 통장입니다.저는 99년9월달에 맨손으로 집을 나온후로 2001년1월까지는 고시원 생활을 하며 메뛰기 생활을 했습니다.이것저것 다했습니다.(농기구조립공장,자동차내외장제공장,중국집아르바이트,제품검사,전단지배포,우유배달,영업,노동일,고시원총무 등) 평일에는 노동일을 할때도 있었고 비오는날이면 노동부에가서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습니다.집을 나와서 처음 외로움이라는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세상은 겪어볼수 있으면 겪어보는것도 좋을것이라 생각이 됩니다.겪어보다보면 자기 적성에 맞는일이 생기고 그곳에서 인정받는곳도 생긴다는것도 알게 되었습니다.저는 사실 수레끌고 우유영업을 3년정도 했었는데 처음에는 무지 부끄럽고 챙피한게 사실이였지만 며칠후 깨달았습니다.챙피한것이 문제가 아니라는것을,무엇보다 열심히 살려는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열심히 살았고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남들 놀때 혼자 아파트를 위층에서 부터 아래층을 타고 상가 빌딩을 올라가서 열심히 설명하고 건강에 대한 공부도 짬짬이 게흘리하지않고 열심히 했고 오더하나 따기위해 30분 혹은 1시간정도를 얘기한적도 있습니다.그러는가하면 한번 빌딩들어갔다 나오면 오더가 몇십개 나오기도 했습니다.저의 영업성적에 동료들이 부러워하기도 했고 놀라워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노력과 성실을 인정해준 타우유회사 아줌마들이 저를 자기회사로 데려가려고 말이 많았기도 했습니다.그정도면 자기회사면 4~500만원은 벌수 있다고 저를 꼬시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저는 알았습니다.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가 문제가 아니라는것을,그것은 성실입니다.한곳에서 묵묵히 열심으로 일하는 성실이 돈을 벌어준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저는 사실 무시를 많이 당하고 살아서 남들이 무시해도 어느정도는 괜찮습니다.
형제들도 못살면 무시하는 판국에 남들이 무시해도 어느정도는 이겨낼 능력이 있습니다.누나나 형수한테도 7개의 등기권리증을 소유하기 위한 과정중에도 싸구려만 입는다는말로 저를 무시했었으니까요.그러나 못살면 형제간에도 무시당하는데 하물며 사회에는 어떻겠습니까?무시하는 사람도 좋지는 않지만 무시당하지 안으려면 노력해야 합니다.한곳에서 성공 못하는데 다른곳에서 성공하라는법 없습니다.무엇이든 열심히 시작하세요.무엇이든 겪어보세요.겪어보다보면 적성에 맞는곳이 생기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목표를 가지고 그에 맞게 노력하고 인내하며 공부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노력하고 종잣돈을 모아가세요.100만원밖에 못버는데 무슨저축이냐고 하는분도 계시지만 풍요한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서는 저축이 선행 되어야만 가능합니다.지금 힘들지만 저축이 없는 삶의 미래는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은행수수료 500원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은행수수료가 아까워 걸어서 은행까지가서 수수료를 아끼는 한편,지금의 CMA격인 MMF를 시작으로 하루이자가 나오는 기쁨을 시작으로 저축은행에 1년짜리 저축을 함께 했었기에 MMF와 저축은행에서 이자가 두곳에서 나왔습니다.그기쁨으로 더욱 열심히 살았던것 같습니다.여려분도 할 수 있습니다. 저 사실 12년개근상은 받았지만 12년개근은 아닙니다.80년도에 초등학생때일입니다.위로 2살차이형이 있는데 하루는 저를 꼬셔서 냇갈에 가서 놀고 10~11시정도에 집에 왔던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야단을 치시고 저는 어머니께서 애가 아파서 병원가서 약먹이고 온다는말로 개근으로 인정받았습니다.(우리어머니 성질이 남자와 다름없습니다.욕도잘하시고 무섭습니다.그렇지만 아들,딸들이 인정해줍니다.왜냐면 어머니의 성질과같이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셨습니다.제가 기억하기로 8개정도의 도시락을 싼적도 있습니다.너무 고마우십니다.)저의 재산은 따로 없습니다.7개의 등기권리증보다 더 귀중한 살아계신 부모님과 그동안 고통을 함께한 105개의통장이 저의 재산입니다.
돈보다 더 중하기때문에 평생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이것은 소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닙니다.열심히 살고 노력해서 살다보면 하늘이 복을 내린다고 생각합니다.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생활은 20년전에도 어려웠고 10년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지만 진짜 기회는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앞으로 10년뒤보다는 지금이 기회가 아닐까요? 아마도 10년뒤 100만원 보다는 지금돈 100만원이 더 값어치가 있을테니요.무엇이든 열심히 사시면 복이 올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