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끝까지 해낼 것.
부지런히 성실히.
실무능력.
좋은 습관을 익힐 것
2.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끝까지 해내라!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손에 넣고 싶다.’는 소망은 마음이 나약하다는 증거다. 손에 넣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에 합당한 대금을 치러야만 자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행동력을 기르는 비결이다. 일을 하지 않고 손에 넣은 여가라면 아직 대금을 치르지 않은 것이다.
한 가지 일에 정통하면 인생의 모든 일에 응용할 수 있다.
행동력 넘치는 인격을 기르기에 가장 좋은 것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을 해야만 순종과 자제심, 집중력, 응용력, 근성 등이 싹트며 그것들을 단련할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전문 기술을 신장시켜 능숙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도 즉석에서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는 요령까지 몸에 익힐 수 있게 된다.
일은 우리를 진보, 향상시키는 살아 있는 법칙, 즉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만 할 법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일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주어진 인생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이든 할 필요가 있다. 어떤 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무거운 짐이자 징벌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랑이자 명예이기도 하다. 일을 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성취할 수가 없다.
사람 속에 숨어 있는 재능은 일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며, 문명은 노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하기를 그만두면 아담의 자손들은 곧 도덕적으로 퇴폐하여 전멸해버릴 것이다.
땀 속에서 배어나는 참된 ‘인생의 환희’
태만, 즉 일을 하지 않는 상태는 사람에게 재앙을 가져다준다. 녹이 철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태만은 사람과 사회를 좀먹는다.
페르시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그 국민들의 생활상을 보고 “쾌락을 추구하는 생활만큼 비천한 것도 없으며, 일에 몰두하는 생활만큼 존엄한 것도 없다. 그들은 이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듯하다.”라고 말했다.
영국이 로마의 속국이었을 때, 로마의 황제인 세베루스는 요크셔 주 요크에 있는 그램피언 산기슭에서 쓰러져 멍석 위에서 숨을 거뒀다. 그때 부하에게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일을 해라!” 로마군의 지휘관이 사기를 잃지 않고 권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일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이탈리아에서는 평범한 전원생활을 보내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최고의 삶인 것으로 여겨졌다. 로마의 박물학자 폴리니우스는 그런 모습을 기록한 속에서, 승리를 거둔 로마군의 지휘관들은 부하와 함께 기뻐하며 쟁기를 손에 잡는 생활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당시는 장군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손으로 경작하지 않으면 안됐다. 월계관을 씌운 쟁기를 가진, 승리의 영광에 빛나는 농부에 의해 경작되는 토지의 기쁨은 매우 커다란 것이었을 것이다.’
그 후 ‘일을 한다는 것은 수치이자 맹목적으로 타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경멸하게 된 것은 모든 분야에서 노예를 대량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로마의 지배자들은 곧 일을 잊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져들게 되었다. 로마제국은 붕괴를 피할 수 없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태만은 ‘악마가 휴식을 취하는 쿠션’
게으른 버릇은 미개인과 폭군들의 특징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을 하지 않고 노동의 산물을 얻고 싶은 법이다. 이 소망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으로 제임스 밀은 ‘원래 정치가 행해지게 된 것은 이런 소망이 사회 일반의 이익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주장했을 정도다.
태만은 인간을 타락시키며 국력을 저하시킨다. 게으른 자가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게으른 자는 언덕을 기어오르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며, 어려움에 맞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으른 자는 인생에서 실패를 거듭한다. 무슨 일에서나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으른 자는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두운 얼굴로 불평만 해대는 가엾은 인간으로 사회적으로는 한낱 짐에 불과하다. 걸림돌이자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새뮤얼 존슨은 탐험가인 버턴이 저술한 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일어나 그 책을 읽었다고 한다. 버턴의 책 속에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는 데 커다란 원인이 있다.’는 한 구절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치명적인 것이며, 사악의 온상이자, 모든 재난의 근원이며,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이며, 악마가 휴식을 취하는 쿠션이자 베개이며 악마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게으른 개의 털은 불결하여 피부병 투성이가 된다. 게으른 사람이 그와 같은 상태를 피할 수 있을까?
고독하게 살지 말라 - 게으르지 말라
‘몸 움직이기를 귀찮아하는 것보다 정신이 태만해지는 것이 훨씬 더 무서운 일이다. 머리는 좋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병이다. 좋지 않은 병이자 정신을 썩게 하는 녹이며, 지옥 그 자체다. 고여 있는 물웅덩이에 구더기가 끊는 것처럼 게으른 자의 머릿속에는 썩어빠진 나쁜 생각이 가득하게 된다. 영혼이 악마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좀 더 대담하게 표현해보기로 하겠다. 어떤 사회적 지위든 상관없다. 어쨌든 그다지 부자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게으른 사람에게 쓰고 남을 정도의 물건들과 원하는 만큼의 행복과 만족을 주었다고 하자. 게으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까지고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지 않고 마음이 병 든 채 여전히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화와 불만을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지으며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고 의심에 가득 차서 사회의 모든 일에 반항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든지, 죽어버리든지, 혹은 환상의 세계로 가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버턴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착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마음과 몸의 건강을, 다음의 말에서 얻기 바란다. 고독과 태만에 굴해서는 안 된다. 고독하게 살지 말라, 게으르지 말라.’
'게으른 마음‘은 정신을 닳아 없어지게 한다
태만하다고 해서 모든 일에 태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몸은 일하기 싫어하지만 머리의 움직임은 게으르지 않다. 곡물을 열매 맺게 하지 못하면 그 대신 엉겅퀴가 게으른 자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에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참된 행복은 두뇌와 몸의 기능이 유효하게 활용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다. 건강과 활기와 기쁨을 잃는 것은 게을렀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 정신적인 피로나 고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게으를 때의 정신은 가장 무의미하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법이다. ‘병에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라고 생각하는 현명한 의사가 나타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한가한 시간이다.’라고 마샬 홀 의사는 경고했다. 프랑스의 마엔느 대주교는 ‘사람의 마음은 맷돌과 같은 것이다. 밀을 넣으면 그것을 빻아 가루로 만든다. 밀을 넣지 않으면 계속 돌아 결국에는 자신이 닳아버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여가가 값진 것이다
태만한 사람은 변명만 늘어놓는 법이다. 게으른 사람들 중에는, 일하기 싫어하면서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길에 사자가 있어서’라거나 ‘저 언덕을 오르기는 힘들 것 같아서’라거나 ‘해봤지만 안 됐고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 노력해봐야 쓸데없는 짓이다.’라고 말한다.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손에 넣고 싶다.’는 소망은 마음이 나약하다는 증거다. 손에 넣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에 합당한 대금을 치러야만 자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행동력을 기르는 비결이다. 여가조차도 일한 결과로 얻은 것이 아니면 진심으로 즐길 수 없다. 일을 하지 않고 손에 넣은 여가라면 아직 대금을 치르지 않은 것이다. 일은 어디에나 있으며, 일을 하면 당연히 여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얻은 여가란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아무런 일도 없거나 혹은 일이 있어도 하려 들지 않는 게으른 자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무미건조한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부르쥬 감옥에 8번이나 수감되었던 한심한 40대 남자의 오른쪽 팔뚝에 문신이 있었다. 그 말은 이 세상 게으른 자들의 좌우명으로 삼기에 적당한 것이다.
‘과거는 나를 비웃었으며, 현재는 나를 괴롭히고, 미래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
괴로움은 극복하는 것, 일은 끝까지 마치는 것
신학자인 스탠리 경, 더비 백작은 글래스고를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좋고 다른 면에서는 존경할만 하더라도 참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은 우리 인생 그 자체이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들려준다면 당신의 실력을 가르쳐주겠다.”
자신이 일에 대해서 품고 있는 애정이야말로 저급하고 저열한 취향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주는 최선의 예방조치이다. 그리고 일을 사랑하는 것은 별 볼일 없는 고뇌와 자기애에 빠진 결과 발생하는 분노를 해소해주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려움이나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을 시험해봤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괴로움과 노동에서 도망쳐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숙명이다. 어려움에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려움이 스스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가능한 한 작고 편한 일만 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연은 노동 본능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때문에 가령 조그만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쉽게 해낼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만들어주려 꾀하는 법이다.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아니 틀림없이 곧 자연법칙의 엄격함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은 놀랄 만한 나약함과 벌을 받게 된다. 폭넓은 이해력이 없으면 사소한 문제도 커다란 문제가 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참으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유효했던 정신력은 텅 비어버린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하나하나 고개를 쳐드는 하찮은 고민거리 때문에 점점 소모되어 버린다.
설사 즐거움은 적다할지라도 언제나 무엇인가에 도움이 되는 일에 종사해야만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보수를 받을 때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월터 스콧은 이렇게 말했다.
“일을 가지고 있으면 깊이 잠들 수 있고 기분 좋게 눈을 뜰 수 있다. 여가를 마음껏 즐기려면 학문이든 의무를 수반하지 않는 일이든 일을 했다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가질 필요가 있다.”
간혹 지나치게 일을 해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나태한 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 지나치게 일을 하다 죽은 사람은 건강관리를 게을리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유배지에서 비로소 알게 된 나폴레옹의 ‘훌륭한 인간미’
실제로 살아온 세월의 길이로 인간의 수명을 측정할 수는 없다. 어떤 업적을 남겼으며,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따라서 살아온 길이를 생각해야 한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수록, 생각하고 감동하는 일이 많을수록 참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으르기만 할 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은 제 아무리 오래 산다 할지라도 그저 숨을 쉬는 것이 전부인 존재일 뿐이다.
옛날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모범을 보여 노동 의욕을 고취시켰다. 사도 바울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자신의 손을 더럽혀 일하라고 가르쳤다.
선교사 보니파티우스는 영국에 도착했을 때 한쪽 손에는 복음서를, 다른 한쪽 손에는 목수들이 쓰는 자를 들고 있었다. 후에 영국에서 독일로 건너갈 때는 건축기술을 익혀서 떠났다. 루터도 원예업자, 목수, 선반공, 시계수리공 등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며 열심히 일해 나날의 식량을 자신의 손으로 벌었다.
훌륭한 솜씨를 지닌 장인을 보러 가면 그 장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돌아올 때면 반드시 머리를 깊이 숙였던 것이 나폴레옹의 습관이었다.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나폴레옹이 한 부인과 걸어가고 있을 때 짐을 지고 걸어오고 있는 하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부인은 화난 듯 거친 목소리로 길에서 비킬 것을 명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부인, 저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요.”라고 일깨웠다고 한다.
제아무리 눈에 띄지 않는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사회의 행복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무력감을 떨쳐내는 비결
중국의 한 황제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한 사람이라도 일하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게으른 여자가 있으면 반드시 이 나라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을 받게 된다.”
언제나 무엇인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습관을 남자는 물론 여자에게도 행복으로 가는 열쇠를 쥐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일을 하지 않는 여자는 두통과 히스테리를 동반하는 나른한 권태감과 무기력함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한 어머니는 이와 같은 무기력함에 져서는 안 된다며 시집가는 딸에게 주의를 주었다.
“휴가를 얻은 아이들이 전부 밖으로 나가버린 후에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한낮의 부엉이처럼 힘없이 멍하니 보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단다. 하지만 젊은 부인들이 빠지기 쉬운 이런 기분은 결코 휩싸여서는 안 된다. 가장 좋은 것은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란다. 무엇이든 좋으니 쉬지 말고 열심히 일을 하거라. 게으름은 사람들을 잡으려 악마가 놓은 덫이라는 네 할아버님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이란다.”
이처럼 끊임없이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한다는 것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건강하게 해준다.
정신건강에 좋은 ‘건강식품’
게으른 자는 자신을 질질 끌고 다니듯 인생을 살아간다. 설사 성격의 좋은 면이 도덕적, 정신적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깊은 잠에 빠져버려서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한편, 활력이 넘치는 인물은 주위 사람들에게 활동력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 된다. 등이 휠 것 같은 단조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시인 찰스 렘은 동인도회사에 근무했었는데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업무에서 해방되었을 때는 하늘로 날아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만 파운드를 준다 해도 그 감옥에서 앞으로 10년이나 더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쁨에 넘친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
‘편지도 쓸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설렌다. 나는 자유롭다! 바람처럼 자유롭다. 앞으로 5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이 넘쳐나는 한가로운 시간을 자네에게도 나눠 주고 싶을 정도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다음은, 그래 아마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일 거야.’
그로부터 2년이라는 길고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 동안 램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비록 단조롭기는 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사무적인 일이 육체적으로 좋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제 편이었던 시간이 지금은 적이 되어버렸다. 그는 다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이다. 정신이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 가장 불건전한 먹을거리이다. 세상일에 거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인생에 절망한 사람에게 천국의 단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산책뿐, 그것도 너무 많이 걸어 지쳐버린다. 나는 시간을 말살하는 난폭한 살인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인도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부로 얻은 ‘재산’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스콧은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근면하다는 것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보다 더 잘 알고 있던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스콧은 근면함이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며 행복을 가져다주는 커다란 수단임을 자신의 아이에게 가르쳐주려 했다.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찰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노동이란 모든 지위의 인간들에게 부과된 계약이라는 사실을 너는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농부가 이마에 땀을 흘려 손에 넣은 빵은 물론, 권태감을 달래기 위해서 부자가 사로잡은 사냥감에 이르기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무엇인가를 얻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처음에 쟁기로 흙을 갈지 않으면 보리가 자라지 않듯이 먼저 일을 하지 않으면 지식은 사람의 마음속에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두 가지 예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보리의 경우는 그 시기의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서 씨를 뿌린 사람이 수확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사고가 일어나든 불행에 휩싸이든 공부로 얻은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염려는 없다. 스스로 획득하나.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는 풍부한 지식은 전부 자신을 위해서 사용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시간을 유효하게 사용해야 한다. 젊었을 때는 발걸음도 가벼우며, 마음도 순수하기 때문에 지식을 쉽게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노력을 게을리 하면 봄과 여름은 의미도 없이 헛되이 흘러가며 가을의 수확은 겉 겨뿐, 그리고 나이 들어 맞이하게 되는 겨울은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쓸쓸한 것이 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무능력’을 키워라
어떤 격언을 처세훈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변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스콧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역사학자인 로버트슨은 ‘지식을 배우지 않는 인생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불과 15세 때 선택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의 좌우명은 ‘언제나 열심히 일하자.’였고, 프랑스의 생물학자인 라세페드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은 ‘살아 있다는 것은 관찰하는 것’이었다.
일에는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교사라는 면도 존재한다. 일의 결과가 일정한 형태로 남지 않는다 할지라도 일을 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면상태보다는 훨씬 낫다. 적어도 소질을 신장시켜 미래에 성공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일은 되기 때문이다.
일하는 습관은 여러 가지 경우에 대처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을 가르쳐준다. 시간의 소중함을 뼈저리기 느끼게 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빈틈없이 세워 시간을 유효하게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게 한다. 그렇게 훈련을 거듭하여 일단 평생을 바칠 만한 충실한 직업을 실제로 갖게 되면 1분 1초라도 헛되이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활 가운데서 맞이하는 여가는 무엇과도 비할 데 없는 최고의 맛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유능한 주부는 곧 유능한 비즈니스우먼
‘게으른 자들은 덧없이 시간을 죽이는 무리들이라고 부른다면 근면한 사람은 시간에 생명과 도덕관념을 불어넣어 시각뿐만 아니라 양심으로도 볼 수 있는 존재로 바꾼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시간을 정연하게 정리하고, 영혼을 부여하고, 자칫 잘못하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를 시간 자체에 불멸의 정신을 부여한다.
이처럼 방향성이 주어진 에너지가 질서정연하게 정리되면 시간은 충실하고 순종적인 하인이 된다. 시간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간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연월일은 사람이 인생에서 이룬 일을 기록하는 구분의 표시로 세계가 멸망한 뒤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 시간 자체가 지상에서 모습을 감출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 시인 콜리지의 이 말에는 진실이 담겨져 있다.
일에 몰두하면 이 체계적인 방법을 더욱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인격형성에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일에 필요한 능력은 나날의 일을 통해 타인과 적극적으로 접촉함으로 해서 더욱 신장하게 된다. 그 일이 가정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것이든 국가의 운영이든 이 사살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유능한 주부는 동시에 유능한 비즈니스우먼이어야만 한다. 자잘한 가사를 정연하게 관리하고, 지갑의 끈을 조여 확실하게 계획을 세워 모든 가사를 자신의 규칙에 따라서 현명하게 처리해나가야만 한다. 능률적인 가정관리란, 근면함과 체계적인 방법, 도덕적 교훈, 신중함, 예측, 실무능력, 통찰력 그리고 통솔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그 어떤 종류의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능숙하게 처리해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이다.
워싱턴이 위대했던 가장 큰 이유
실무능력은 실로 여러 분야에서 활용된다. 실무능력이란 모든 일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은 가정관리나 경영, 상업이나 무역, 혹은 국가의 정치에서도 전부 요구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훈련은 실생활에서 무엇보다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격을 향상시키는 데도 최고의 훈련이 된다. 왜냐하면 근면함과 주의력, 자기희생, 판단력, 기지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하는 마음 등을 실제로 발휘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훈련을 거듭한다는 것은 문학적인 교양을 쌓거나 철학적인 사색에 잠기는 것보다 훨씬 더 충실한 인생과 행복을 약속해준다. 왜냐하면 긴 안목으로 보자면 실무능력은 지성과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성격과 습관을 재능으로 바꿔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단, 이것은 끊임없는 주의력을 발휘하여 신중하게 경험을 쌓아가는 것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재능이라는 사실을 덧붙여 밝혀두겠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서는 평생 쇠를 불려야만 한다. 뛰어난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실무를 배워 실천해야만 한다.
뛰어난 실무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 스콧의 특징이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실생활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 특히 최고의 지휘관과 같은 사람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그는 단언했다.
워싱턴도 역시 지칠 줄 모르는 실무능력자였다. 겨우 13세 때부터 영수증에서 약속어음, 변환어음, 계약서, 채권, 임대계약서, 토지 권리서까지 딱딱한 서류들을 자진해서 정성스럽게 베껴 썼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익힌 습관이 후일 복잡한 정치문제를 솜씨 좋게 처리할 수 있었던 놀라운 실무능력의 모태가 되었던 것이다.
천재들은 모두 놀랄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실무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명예를 얻기에 합당하다. 명화를 그린 화가. 명장을 세상에 남긴 문학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수많은 곤란에 직면하고 일상에서의 무시무시한 전쟁을 경험한 끝에 성공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비록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고는 하지만 평화적인 승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손을 피로 물들이지는 않았다.
천재라 불리는 사람은 힘든 일을 싫어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잘못된 생각도 없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천재는 예외 없이 제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마다않고 해왔다. 힘든 노동을 보통 사람보다 더 잘 견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에 보다 높은 재능과 불타는 듯한 정열을 바쳐왔다.
후세에 남을 만한 위대한 작품은 결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불굴의 인내력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천재들의 걸작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힘은 일하는 자에게만 부여된다
힘은 일하는 자에게만 부여된다. 게으른 자는 언제나 무력하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제아무리 신분이 고귀하다 하더라도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정치가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루이 14세조차도 ‘왕은 일을 함으로써만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쉬지 않고 일해 얻은 수많은 경험과, 인생의 여러 가지 일을 통해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실질적인 훈련만이 어느 시대에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활력 넘치는 생명력으로서 열매를 맺어왔다.
세련되고 단련된 실무능력은 정치나 문학, 과학, 혹은 미술 등 모든 직업에 도움이 된다. 문학작품의 걸작은 대부분 체계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추구해온 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근면함과 주의력, 시간의 절약 등과 같이 어떤 직업에서 효과적인 요소는 다른 직업에서도 역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걸작은 재능만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영국의 초기 작가들은 모두 바쁜 사람들로 실무에 대한 기능도 충분히 익힌 사람들이었다. 성직자라는 계층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문단이라는 분야는 아직 확실하게 자리 잡지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다.
셰익스피어는 극장의 경영자였으며, 서툰 연기자이기도 했다. 그는 문학적 재능을 기르기보다는 돈을 버는 데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실무능력을 갖춘 활력 넘치는 인물의 모습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위대한 작가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 때는 문학 활동이 활발하여 눈에 뛰는 수많은 명작을 남긴 시대였다.
실무능력은 세련된 교양인을 과학적, 혹은 문학적인 직업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훈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볼테르는 ‘문학과 실무의 정신은 같은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활력과 신중함, 세련된 지성과 실무적인 지혜, 활동적 요소와 사색적 요소가 전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즉 베이컨이 ‘응축된 인간성의 극치’라고 말했던 결합이 없이는 어느 쪽도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풍부한 재능을 가진 작가라 할지라도 하루하루 진지하게 실무에 종사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나 일상의 일들을 취급해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대부분의 명작은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저술된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분전환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평지 『쿼털리 리뷰』의 편집장인 기포드는 생활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한 번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일한 뒤에 간신히 얻은 글을 쓰기 위한 한 시간은, 문학을 팔아먹고 있는 사람의 하루 온종일의 노동보다도 훨씬 값진 것이다. 이 한 시간은 마치 사슴이 냇물의 물로 갈증을 푸는 것처럼 환희에 넘친 영혼을 되살아나게 한다. 문학가의 하루의 노동은 숨을 헐떡이며 싫증이 나지만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비참한 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즐겁게 일하기 때문에 더욱 ‘좋은 일’이 생긴다!
가장 이상적인 교양은 매사에 열중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습관을 들여 정신을 단련하고, 절박한 고비를 넘길 만한 기지를 길러 힘차게 활동하는 자유를 낳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실무라는 면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그들이 학문을 하는 곳에서는 진지하고 견실한 성격을 은근히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성격에는 주의력과 근면함 그리고 학문의 길을 끝까지 가는 데 필요한 능력과 에너지가 언제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보다도 결단력이 있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매사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우가 많다.
생각 이상으로 행동할 것
몽테뉴는 참된 현인에 대하여 ‘만약 그들이 과학에 정통해 있다면 행동에서는 그보다 더욱 뛰어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자신이 입증한 사실이 뒤집어지면 갑자기 폭풍처럼 기분이 격양되고 지식에 의하여 영혼이 이상할 정도로 끓어오르는 것이 눈에 보인다.’라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공상적인 문학이나 철학적인 문학에 경도되거나 특히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져버리면 일상생활에서는 실무능력이 결여된 인간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색능력과 실무능력은 별개의 것이다. 서재에 들어앉아 펜을 잡고 인생이나 자신의 방침에 대해서 원대한 이상을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서재에서 한 걸음만 밖으로 나오면 그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색능력은 왕성한 사고력을 필요로 하며, 실무능력은 정력적인 행동에 의해서 발휘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능력은 보통 균형을 잃은 상태로 연결되어 있다. 사색적인 인간에게는 우유부단한 면이 있다. 그는 한 가지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한다. 교묘하게 세워진 찬반양론 사이에 끼어 행동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어느 쪽도 선택하기 못한 채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무적인 사람은 논리를 따지는 전제는 무시한 채 뚜렷한 확신에 도달하여 자신의 신념을 행동에 옮기기 때문에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과학자에게도 뛰어난 실무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아이작 뉴턴이 학문적 지식이 풍부한 현인이었다고 해서 조폐국 감독관으로서의 평판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독일의 훔볼트 형제는 문학과 철학, 언어학, 광업, 외교와 정치 등 무슨 일에서나 똑같이 재능을 발휘했다.
필요로 하는 인재, 중용되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나폴레옹 1세가 과학자에게 품고 있었던 생각을 살펴보면 그는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행정력의 강화를 꾀했던 듯하다.
그에게 선택을 받았던 과학자 중에는 실패한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멋지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의 천문학자 라플라스가 내무부 장관의 자리에 올랐었는데 임명되자마자 바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후에 나폴레옹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라플라스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려 들지 않고 언제나 말초적인 것을 추구해왔다. 그의 의견은 전부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즉, 미분적분의 분석적 계산정신을 실무의 관리에도 도입하려 했던 것이다.” 라플라스의 이런 습관은 서재 안에서 완전히 굳어버린 것이었고 그것을 실제 응용하기에 그는 너무 나이를 먹었던 것이었다.
다르는 이와 반대가 되는 경우였다. 그는 실제로 실무에 대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세나 원수 밑에서 군대의 감독관직을 맡아 스위스에서 일한 적이 있었으며, 그 동안 작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정부의 평의원 및 궁정감독관이라는 직책을 나폴레옹이 권하자 다르는 망설였다.
“저는 책 속에 묻혀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신하란 어떤 것인지 배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이렇게 대답했다. “신하라면 내 주위에 얼마든지 있네, 숫자상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은 견고한 의지를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며 모두를 계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감독관일세.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네를 뽑은 게야.”
다르는 황제의 뜻을 받아들여 결국에는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겸허하고 품행이 방정했으며 공정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자기만의 시간’을 활용하여 예기를 기른다
실무능력을 익힌 사람은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어떤 사정으로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일을 버릴 수밖에 없게 되더라도 곧 다른 일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낸다. 근면한 사람은 여가의 귀중함을 맛보기 위해서 바로 일을 찾아낸다. 근면한 사람에게는 여가가 있지만 게으른 사람에게는 일도 여가도 없다.
“여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여가는 없다.”고 조지 허버트는 말했다.
“활동적인 사람, 바쁘게 일하는 사람은 일의 성과를 기대하면서 일에서 해방된 한가로운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무료함을 느끼는 사람, 일을 재빨리 처리하지 않는 사람, 타인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더 잘 풀릴 문제에도 참견하는 사람, 경박하고 하찮은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 이것은 베이컨의 말이다.
이처럼 위대한 업적의 대부분은 근면함이 제2의 인격이 되어, 일하는 것이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성취한 것들이다.
비록 조그만 취미라 할지라도 그것은 노동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 취미는 어떤 종류의 근면함을 요구하며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즐거운 일을 제공해준다.
단, 공포정치를 행한 로마의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취미인 파리를 잡는 것과 같은 취미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랜턴을 만들었던 마케도니아의 왕, 자물쇠를 만들었던 프랑스 왕의 취미는 이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매우 기계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어떤 압력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된다. 일 속에서 즐기는 휴식이자, 기분전환이며,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하는 과정이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취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지적인 것이다. 하루의 일을 마친 활동적인 사람은 또 다른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과학이나 예술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학으로 여가를 보낸다.
이와 같은 레크레이션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진부함과 속됨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지성적인 취미라 할지라도 거기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예기를 기르거나 기분전환을 할 수 없게 된다. 피곤에 지쳐 기력을 잃고 기분이 침체된다면 일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효과밖에 기대할 수가 없다.
일을 마친 뒤에 펜을 잡고 글을 쓰며 여가를 즐긴 유능한 정치가는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그들 작품 중 몇몇은 최고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리아 전기』는 아직도 고전으로 살아남아 있다.
‘야무지지 못한 인생’은 수명을 단축시킬 뿐
결론은 무리하지 말고 적당하게 일하면 육체를 위해서도 정신을 위해서도 좋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육체에 의해 지탱되며,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해가 되는 것은 지나치게 일을 할 경우이지 일 자체가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힘든 일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것은 따분한 일, 지나치게 체력이 소모되는 일, 장래성이 전혀 없는 일이다. 장래성이 있는 일은 건강하다. 사회에 공헌하면서 희망에 넘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의 열쇠를 쥐는 비결이기도 하다. 적당한 두뇌운동은 다른 일에 비해서도 결코 피로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선을 지켜가며 규칙적으로 한다면 육체를 단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 몸의 상태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면 자기 능력 이상의 부담은 주지 않게 되는 법이다. 그보다는 그저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이 전부인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유해하다. 일에 정진하기보다는 무위한 생활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빨리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법이다.
단, 지나치게 일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비경제적이다. 특히 걱정거리가 수반된 경우에는 사람을 아주 지치게 만든다. 걱정거리는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늘 초조함을 느끼고 흥분상태에 빠져 있게 되기 때문에 몸이 약해진다. 격렬한 마찰을 일으켜 기계의 톱니를 닳아버리게 만드는 모래와도 같은 것이다. 일상에서 피로와 걱정거리가 찾아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과도한 두뇌운동은 무거운 부담이 된다.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놀라운 기술을 선보이겠다며 근육이나 뼈를 상하게 하는 체조선수처럼 두뇌노동자도 자신의 적정 한계나 도를 넘어서면 신경이 피로해져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마음을 단련하면 ‘인생의 망설임’을 날려 버릴 수 있다
자신을 제어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또 다른 형태의 용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격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요소라고 여겨지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인간을 ‘앞날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한 것은 이 자제라는 미덕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커다란 차이점이다. 사실 자제심 없는 참된 인간다움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자제는 모든 미덕의 근원이다. 충동과 정열에 따라서만 행동하면 사람은 그 순간부터 정신적인 자유를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물결에 휩싸여 결국에는 자신의 가장 강한 욕망의 노예로 전략해버리게 된다.
동물보다 나은 상태, 즉 정신적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본능적인 충동을 억제해야만 한다. 그것은 자제심의 발휘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힘이야말로 육체와 정신을 확실하게 구별하는 것이며, 우리 인격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다.
성경은 ‘마을을 점령한’ 힘이 강한 자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지배한’ 마음이 강한 자를 더욱 칭찬하고 있다. 마음이 강한 자란 엄격하게 자신을 단련하면서 사고나 언어, 혹은 행동을 언제나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사회를 좀먹으며, 사회에 수치가 될 만한 범죄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사악한 욕망도 대부분 용기 있는 자기단련, 자존심 그리고 자제심 앞에서는 그 영향력이 약해질 것이다. 이들 미덕이 몸에 배도록 노력하면 언젠가는 깨끗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순수한 미덕과 자제심에 의해 인격이 성장하고 형성되게 된다.
얼마나 좋은 습관을 익혔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가치는 결정 된다.
인격을 지탱해주는 최고의 기둥이 되는 것은 언제나 습관이다. 그 습관에 따라서 의지의 힘이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작용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비로운 지배자가 되기도 하고 잔혹한 독재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습관에 기꺼이 따르는 가신이 될 수도 있고, 굴종하는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습관은 선한 길을 걷는 자를 도울 수도 있고 파멸의 길로 사람을 내몰 수도 있다.
습관은 용의주도한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규칙적인 훈련과 실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참으로 놀랄 정도다. 예를 들어서 마을에서 붙잡힌 불량배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데려온 거친 야생마처럼 앞날이 절망적인 사람이라도 진지하게 훈련과 실습을 거듭하면 진정한 용기와 인내력과 자기희생정신을 익힐 수 있게 된다.
치열한 전장이나 화재가 일어난 사라샌드 호, 난파당한 바켄헤드 호에서와 같이 무시무시한 재해를 만났을 때 정신을 단련한 사람들은 그 얼마나 용감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줬는가?
도덕적인 정신을 단련하고 실습해보는 것은 인격을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그것이 없으면 정상적이고 규율에 합당한 일상생활을 보낼 수 없다. 이와 같은 단련과 실습을 통해서 자존심을 기르고 복종하는 습관을 배우며, 의무에 대한 관념에 눈을 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독립정신을 가진 자제심 강한 사람은 모두 단련을 거듭해온 사람들이다. 그 단련이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도덕적으로도 높은 차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고 그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진 천성에 복종해야 한다. 마음속에 살고 있는 훈계자, 즉 양심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충동과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사회학자인 허버트 스펜서는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자제심은 이상적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완벽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충동에 휩싸이지 말고 차례차례로 자신을 엄습하는 여러 가지 욕망에도 현혹되지 말고, 자제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머리에 떠오를 몇몇 감정을 정리정돈 하여 그 최종적인 결정에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꼭 해야만 할 일을 냉정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이 교육, 아니 적어도 도덕적인 교육을 베푸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은 인생과 어울리지 않는다.
최초이자 최고의 도덕적 훈련을 쌓는 의무교육은 가정에서 행해진다. 그 다음이 학교, 마지막이 실생활의 거대한 도장인 사회이다. 하나하나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지내온 환경에 따라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이나 학교교육의 좋은 점을 나도 경험하지 못하고 예절교육도 받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하며, 교육도 훈련도 받지 못했다면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일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사회로서도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규율 있는 가정에서는 훈련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조금도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도덕적 훈련은 자연법칙의 힘과 하나가 되어 행해진다. 훈련을 받는 자는 무의식중에 그 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 훈련이 우리의 전 인격을 형성하며 평생을 따라다니는 습관을 기른다. 하지만 특별히 훈련을 받았다는 느낌은 거의 받지 못하는 법이다.
어떤 부인의 회상록 속에 가정에서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예가 있다. 한 여자가 부인과 함께 영국과 유럽의 주요 정신병원을 시찰하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발견을 했다. 즉,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의 대부분은 형제가 없어 어렸을 때 자신이 바라는 것을 참는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대가족 속에서 자라 자기단련을 배운 사람은 정신병에 걸리는 확률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도덕적 자질은 가정에서의 조기훈련과 주위 사람들의 모범에 의해서 개발됨과 동시에 타고난 성격과 육체적인 건강상태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도 크다. 하지만 주의 깊고 인내심 강한 자제심에 의해 도덕적 자질을 통제하며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개개인의 노력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유능한 교사는 “성격이나 습관은 라틴어나 그리스어와 마찬가지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는 그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존슨은 기분이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으로 젊었을 때부터 그것 때문에 고민이었다. “기분이 좋고 나쁨은 그 사람의 의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말했다.
무슨 일에나 견디고 만족감을 맛보는 습관을 들이느냐, 불평만 해대는 불만에 가득 찬 상태로 있는 습관을 들이느냐 둘 중 하나이다. 자칫 잘못하면 조그만 악을 과장하고, 커다란 행복을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들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찮은 재앙에 발목이 잡혀 그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훈련에 따라서 밝은 성격을 갖게 될 수도, 병적인 성격을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매사를 좋은 쪽으로 밝게 해석하고, 인생을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다른 습관과 마찬가지로 훈련과 노력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 좋은 부분만을 보려고 노력하는 습관은 1년에 천 파운드를 받는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이다.”라는 존슨의 말도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다.
자신 속 ‘미지의 에너지’
격한 성격을 반드시 나쁜 성격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성격이 격할수록 그만큼 자제와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존슨은 “사람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인간으로 완성되어가며 경험을 쌓을수록 진보한다.” 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사람의 성격의 폭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 도량이 얼마나 큰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문제다.
사람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을 저지른 뒤에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 하는 것 때문에 파멸하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일으킨 재난을 좋은 약으로 삼아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거듭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경험을 해도 무엇 하나 배우려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마음이 좁아지고 불쾌해지며 타락해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젊은 사람의 경우, 격한 성격이라고 하면 폭발 직전에 있는 미완성의 에너지를 일컫는 경우가 많은데, 그 에너지도 올바른 분출구를 부여하면 유효하게 도움이 될 것이다.
때로는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가만히 견디는 바위’ 처럼
격한 성격이란 흥분하기 쉬운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잘 억제하지 않으면 발작적으로 정열이 폭발해버린다.
하지만 적당히 억제되어 증기기관 속으로 들어간 증기가 사이드벨브와 조압기와 레버에 의해서 조정되듯 이러한 성격도 어떤 힘에 의해서 잘 움직여주면, 유효한 에너지원이 되어 틀림없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에 남은 인물 중에도 격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원동력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컨트롤하는 굳은 결의도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크롬웰도 젊었을 때는 몰상식하고 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화를 잘 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서울 것도 없었던 성격은 젊고 왕성한 에너지와 결합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혈기에 넘친 잘못을 저지르게 했다. 태어난 고향에서는 유명한 불량배로 여겨질 정도로 오직 악의 길로만 치달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를 구한 것은 종교의 힘이었다.
칼뱅주의의 엄격한 규율이 미친 듯 날뛰던 그의 성격을 조용히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왕성한 에너지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불타올라 공적인 장소에서 그 분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20년 가까이에 걸쳐서 영국의 전역을 뒤흔들 만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네덜란드 나소 가의 영웅적인 왕자들도 모두 자제력과 자기희생, 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인물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초대 총독이었던 윌램 1세가 윌렘 더 사일런트(침묵)이라고 불렀던 것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될 때는 입을 다물고, 조국의 자유를 위협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는 자신의 의견을 힘차게 발표했다. 평소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온화하고 은근했기 때문에 대립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를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까지 혹평한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행동해야 할 때 보여준 그의 용기는 영웅적인 것이었으며, 그의 강한 결단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가 모들리는 네덜란드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그에 의하면 ‘성난 파도가 미쳐 날뛰는 폭풍우 속의 바다에서 가만히 견디고 있는 바위’란 윌램 1세의 친구가 그의 강한 의지를 표현할 때 즐겨 쓰던 말이었다고 한다.
대성할 사람은 ‘격한 감정과 억제’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할 줄 안다
모들리는 월렘 더 사일런트와 워싱턴을 비교했다. 이 두 사람에게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워싱턴은 윌렘과 마찬가지로 존엄함과 용기, 순수함,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지질이라는 면에서 역사 속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이다.
그는 어려움이나 위험에 직면했을 때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려 했는데 그런 그의 모습은 선천적으로 침착하고 둔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워싱턴은 원래 성격이 격하고 어떤 일에 쉽게 열중하는 스타일이었다. 타인에게 보여준 다정함과 온화함, 예의바름, 배려 등은 모두 소년시절부터 끊임없이 실행해온 엄격한 자제와 자기 수양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워싱턴의 전기를 저술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 가지 일에 열중하기 쉬운 정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여러 가지 유혹과 자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을 억제하는 노력을 언제나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격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힘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인격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한 자제심이 아닐까? 훈련의 결과 그렇게 된 부분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타인에게 주어지지 않은 이런 힘을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시인 워즈워스는 어렸을 때 고집 세고 변덕스러우며 난폭해서 채벌을 가해도 고집을 피우며 반항을 했다. 하지만 인생경험에 의해 그의 성격이 단련되어 점점 자제심을 발휘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어렸을 때의 성격은 후에 그의 작품을 공격하는 사람들과 맞설 때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기의식과 함께 워즈워스의 일생을 가장 특징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 것은 자존심과 독립정신일 것이다.
순간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덧없음
육체적으로는 약하다 할지라도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영혼은 행동적이고 강인하여 매우 뛰어난 것이 된다.
턴들 교수는 패러데이의 성격과 학문에 대한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 속에서 패러데이를 ‘강한 독창성과 불과 같은 격렬함을 가지고 있지만, 다정함과 섬세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다정하고 조용한 그의 태도 밑에는 화산과도 같은 열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열중하기 쉬운 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자기 수양을 통해서 그 정열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쏟아 부어 목적 달성을 위한 힘으로 바꿨던 것이다. 한때의 정열에 휩싸여 무의미하게 그 힘을 낭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패러데이의 인격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뛰어난 장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자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 자기희생이다. 분석화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그는 마음만 먹으면 경제적으로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패러데이는 그와 같은 유혹을 뿌리치고 순수하게 학문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했다.
“대장장이의 아들이자 제본소 견습생이었던 그는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여 15만 파운드의 재산을 택할 것인가 한 푼도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했다. 그는 학문을 선택했다. 하지만 패러데이의 이름은 영국의 학회에 영광을 가져다준 자로서 높이 평가되어야만 한다.”
마음에 간직해두어야 할 처세의 지혜
행복을 잡기 위해서는 행동뿐만 아니라 말도 컨트롤할 필요가 있다. 주먹으로 때리는 것보다 더 깊은 상처를 사람에게 주는 말도 있는 법이다. 사람은 검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기 담긴 말로 상대방의 가슴을 찌르는 적이 있다.
‘언어의 일격은 창의 일격보다 더 날카롭다.’는 프랑스의 속담이 있다. 신랄하고 재치 있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면 상대방이 곤란해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말을 참기란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스웨덴의 여성작가인 브레메르는 저서 『가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말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신다! 날카로운 칼보다도 더 깊이 가슴을 찢어놓는 말이 있다. 평생 가슴에 박힌 채 잊을 수 없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에 운명까지도 좌우된다
말을 어떻게 주의하느냐 하는 것을 통해서도 그 사람의 인격을 알아볼 수 있다. 분별력 있게 억제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희생하면서까지 모욕적이고 가차 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둔감한 사람은 입을 조심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전부 말을 하기 때문에 가령 농담이라 할지라도 친구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현명한 사람의 입은 마음에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입에 있다.”고 말한 것은 솔로몬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참으려는 마음과 자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머리를 재빨리 회전시켜, 그곳의 분위기에 휩쓸려 내뱉는 것임에 틀림없는 말을 하는 충동적인 천재는 비아냥거림이나 비꼬는 말을 제멋대로 하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그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놀릴 생각으로 기지에 넘친 심술궂은 말만 하다 결국에는 실각한 정치가도 있다.
“우리는 말 한마디 때문에 수많은 우정과 국가의 운명이 갈린다는 사실을 명심해두어야 한다.”고 벤담은 말했다. 기지에 넘치기는 하지만 상대방이 가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참기 어렵겠지만 우선은 펜을 내려놓는 편이 좋을 것이다.
“때로는 거위의 울부짖음이 사자의 발톱보다 더 아픔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스페인 속담도 있다.
칼라일은 크롬웰에 대해서 “그는 자신의 기분을 마음에 담아두지 못했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윌렘 더 사일런트에 대립했던 사람들은 그가 거만하거나 경솔한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감탄했다. 워싱턴 역시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언어를 선택하여 적을 윽박지르거나 논의에서 일시적인 승리를 얻으려하지 않았다.
결국 세상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 어떤 식으로 침묵을 지켜야 하는가를 알고 있는 현명한 사람 주위에 모여 그를 지지하게 되는 법이다.
‘침묵보다 뛰어난 말’을 하라
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사람이 “그때 말하는 게 아니었다.”라며 후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침묵한 것이 실수였다며 후회하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뛰어난 말을 하라.”고 피타고라스가 말했다.
조지 허버트는 “상황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입을 다물어라.”라고 말했다.
시인 리 헌트가 ‘신사적인 성인’이라 부른 반종교개혁의 지도자, 프랑스의 가톨릭 주교 프랑소와 드 사르는 “까탈스러운 어조로 진실을 말하느니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다. 맛있는 요리에 맛없는 소스를 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가톨릭 신자인 라코르데르는 말을 으뜸으로 침묵을 그 다음으로 생각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침묵은 말 다음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를 얻은 말은 그 얼마나 강력한가? 웨일즈에 내려오는 오랜 속담 중에 ‘황금의 언어는 축복받은 자의 입에 있다.’는 말이 있다.
스페인의 유명한 시인 레온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는 그의 자제심이 얼마나 강한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성경의 일부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죄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어두운 감옥 속에서 몇 년간 갇혀 있었다. 그러다 석방되어 다시 교수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첫 강의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은 오랜 감옥생활에 대한 예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레온은 자신을 감옥에 가둔 사람들을 비난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고 거칠지도 않았다. 그는 5년 전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강의를 재개했으며 예전과 다름없는 인사를 마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실패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반대로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기 조차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기만이나 이기적인 행동, 잔혹한 행위 앞에서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다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비록 자신과 상관없다 할지라도 비열하고 천박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화를 내는 법이다.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한심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악인보다 선인들이 더 많지만 악인은 선인보다 대담하다는 이유만으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래도 결단력 강한 사람을 칭찬하게 된다. 우리가 곧잘 악인의 편을 들게 되는 것은 악인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과한 것이다. 틀림없이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며 곧잘 후회하곤 한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며 분하게 여기는 적도 결코 적지 않다.“
펠테스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은 잘못된 일이나 부정한 행위를 보고도 못 본 척하지 않는다. 기분이 고조되면 마음에 쌓였던 것을 격렬한 어조로 표현한다.
하지만 우리는 경솔하게 타인을 경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선량한 사람은 자칫 일을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열정을 나타내는 그 성격이 그대로 속 좁음을 나타내는 경우도 종종 있는 법이다.
도량이 넓지 못한 것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식을 넓히고 인생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세련된 사려와 분별력이 있다면 도덕적인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성급한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분별력 있는 사람이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일들을 공평하게 판단하고 남을 배려하는 신중한 행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즉, 교양과 경험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모두 마음이 넓고 자신을 억제할 수 있다. 어리석고 마음이 좁은 사람은 모두 집념이 강하며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도량이 넓은 사람은 가지고 있는 실용적인 지식에 어울리게 타인의 결점이나 약점을 관대하게 포용한다. 인격형성 과정에서 익혔어야 할 환경을 컨트롤하는 힘과, 잘못과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나약한 저항력을 고려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죄악은 모두 자칫 잘못했으면 나도 저질렀을지도 모를 그런 것들뿐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뜻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법이다. 밝은 사람은 인생을 즐겁게, 어두운 사람은 인생을 답답하고 어둡게 살아간다. 자신의 성격이 그대로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집념이 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주위 사람들도 자신에게 같은 태도를 취한다.
어느 날 밤, 파티를 마치고 돌아가던 사람이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수상한 사람이 자기 뒤를 쫓아온다고 말했다. 조사해봤더니 놀랍게도 그것은 그 사람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인생은 대부분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싶다면 자신이 먼저 호감을 가져라
타인과 친하게 지내고 신뢰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의 인격에 대해 호의를 표해야 한다. 사람의 얼굴과 모습이 모두 다르듯이 사고방식과 성격도 각양각색, 각자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타인과 친하게 지내고 신뢰받고 싶다면 나도 그 각각의 차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특징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남아메리카의 마을 중에는 갑상선이 부어 생긴 혹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 있다. 그것이 없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영국 사람들이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 영국 사람들을 무시한 마을 사람들은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저 사람들을 봐! 혹이 하나도 없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남들과 다른 점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타인의 차가운 태도에만 너무 신경을 쓰다 결국에는 절망에 빠져버리고 마는 사람들도 많다.
주위 사람들이 냉정하고 가차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내가 성급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걱정거리가 사실은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인 경우는 그보다 더욱 많다.
남들이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화를 내어 문제를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화를 내면 상대방의 변덕스러운 마음이나 비뚤어진 근성에 쓸데없이 몸을 노출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을 통해서 말한 적의가 자신의 가슴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조지 허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적의에는 신경 쓰지 말고 호의는 민감하게 포착할 것
위대하고 선량한 학자인 패러데이는 현실에 맞는 지식과 풍부한 경험에서 때어난 멋진 충고를 틴들교수에게 적어 보냈다.
‘오랜 경험을 통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세상일을 알게 된 이 노인이 한마디 하는 것을 허락해주기 바라네.
젊은 시절의 나는 사람의 기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상상과 그 사람의 참된 기분이 서로 엇갈리곤 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말에는 가능한 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반대로 상대방이 다정하게 호의를 표시한다고 생각되면 바로 그것을 포착하도록 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진의는 언젠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과 대립하는 상대방에게 관대한 마음으로 대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 즉, 이치에 어긋나는 편견의 결과는 모르는 척하고 호의와 친절을 민감하게 포착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평화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는 편이 더 행복하다. 상대방의 반대에 부딪쳤을 때, 그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올바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혼자서 분노를 참지 못해 치를 떨었던 적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자네는 상상할 수도 없을 걸세. 그래도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네. 그 점에 있어서만은 내 자신을 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네.'
지금까지의 ‘삶의 틀’을 한번 깨트려보자
자제심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그것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성실한 삶을 통해서이다. 자기희생의 미덕이 없으면 이기적인 욕망의 노예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과 매우 비슷한 사람의 포로가 되어버리기까지 한다.
그의 흉내를 내며 자신도 같은 행동을 한다. 자신의 소속계급을 지배하고 있는 자를 날조된 수준으로까지 따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자신의 수입은 생각지도 않고 무리를 해서 이웃을 흉내 내어 무리하게 돈을 사용한다. 주위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하나하나 동조하며 그것을 그만둘 도덕적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타인의 돈을 써서라도 생활수준을 높이고 싶다는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렇게 점점 빚이 늘어나게 되어 결국에는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도덕적 비열함, 우유부단한 성격, 의연한 독립심의 결여 등이 모든 것의 원인인 것이다.
마음이 올바른 사람은 자신의 거짓된 모습 보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돈도 없으면서 부자인 척하거나, 자신이 놓인 환경에 어울리지도 않는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는 생각지도 않는다. 부정하게 타인의 돈에 의지하려 하지 않고 자기 수입의 범위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수입 이상의 생활을 하고 싶어서 빚을 지는 사람은, 부정하다는 면에서 보자면 타인의 지갑을 훔치는 소매치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남의 돈으로 생활하는 것은 부정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거짓된 행동이기도 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돈을 꾸는 자는 거짓말쟁이다.”라는 조지 허버트의 격언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정치가 샤프트버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바라며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지위를 얻고 싶어 초조해하는 마음이 모든 부도덕의 근원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