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記/도서2016. 9. 2. 16:32

 

1.

재밌는 글이네. 국부 이승만 십색기.

 

 

 

2.

육이오 전쟁의 승패를 가른 토지 개혁
  • 육이오 전쟁을 도발한 북한의 김일성과 박헌영은 한 달이면 남한을 완전 점령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해방 이후 남한 내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들끓었다. 당시 북한은 지주들의 땅을 무상 몰수하여 소작인들에게 무상 분배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서른세 살에 불과한 청년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토지 개혁이다. 소작인 생활로 입에 풀칠하던 농노 68만 가구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농토가 생긴 것이다. 김일성이 들어오면서 꿈에 그리던 전답이 4,500평이 생겼으니 김일성이 가짜든 진짜든, 젊었든 늙었든 따질 바가 아니었다. 김일성은 이러한 농민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그가 주장하던 소위 통일전쟁을 준비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소작인 68만 가구를 충성심 강한 전사로 끌어들이면 통일의 결실을 맺게 되리라고 확신했던 듯하다.

    남한의 농민들, 특히 소작인들은 북한의 이러한 소식을 듣고 공산주의라는 게 저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고 김일성의 북한을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김일성이 ‘내려가기만 하면 남한 인민들이 다 환호할 것’이라고 믿은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시 남한은 지주, 재벌, 친일 고급 관료들이 모여 한민당을 결성했다. 일본은 조선을 강점하면서 통치 대리인을 두었는데, 이들이 바로 지주들이요 친일 고급 관료들이었다. 이러한 한민당의 정점에 이승만 세력이 있었고, 더 위에 군정이 있었다. 이들은 일치단결하여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삼아 자신들의 방패와 방죽으로 삼았다.

    1946년 3월, 북한에서 무상 몰수·무상 분배 방식의 토지 개혁이 이뤄졌다는 소문을 들은 남한 농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거지처럼 살던 소작인 한 가구에 무려 4,500평이라는 땅이 생긴 북한 소작인들 입장에서는 천지개벽이 이뤄진 것이다. 아마도 남한의 소작인들은 당장이라도 38선을 넘어가 그 땅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던 한민당은 버티고 버티다가 1950년에 이르러, 하는 수 없이 유상 몰수·유상 분배라는 타협안을 들고 나왔다. 지주들이 갖고 있는 땅을 국가가 사서 소작인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자유 경제를 당연시하는 미 군정이 있는 한, 남한에서 무상 몰수·무상 분배라는 공산주의식 토지 개혁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유상 몰수·유상 분배는 무상 몰수·무상 분배보다는 훨씬 약하긴 하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지주들 입장에서는 불만스럽지만 그나마 다행이고, 소작인들 입장에서는 공짜가 아니라 섭섭하지만 그래도 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남한 정부는 토지에서 나는 생산량의 1.5배를 땅값으로 계산, 국가에서 5년 분할 상환 지가 증권을 지주에게 주고 토지를 사들였다. 이승만 정권은 이렇게 지주들의 땅을 사들여, 소작인 가구당 1천 평씩 잘라 팔아 주었다. 그 대신 소작인들에게는, 정부가 지주에게 갚아야 할 돈을 5년간 나눠 대신 내도록 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북한이 성공하고 남한이 그보다 못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친북 학자들은 북한은 소작인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나눠 준 반면 남한의 이승만 정권은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친일 지주들 입장을 대변하여 무상으로 빼앗지 않고, 그것을 사서 소작인들에게 팔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인연의 법칙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 저물어야 그 결실이 제대로 열렸는지 보여 준다. 장밋빛 정책이야 얼마든지 내걸 수 있지만,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그들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모든 우주 법칙이 총동원되어 이 인연을 계산하고 이끌기 때문에, 개인의 생각대로 호락호락 되지 않는다.

    1950년 4월 6일 남한은 유상 몰수·유상 분배 방식의 토지 개혁을 실시했다. 이 무렵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제 탱크 등 모든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남한의 소작인들은 평생 가져 보지 못한 자신들의 땅에 모를 심고, 감자를 심고, 고추를 심었다. 이런 소작농이 무려 180만 가구였으니 땅을 준 이승만에 대한 지지도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1946년에 김일성이 북한 소작인들로부터 받은 환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열화 같은 지지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그 결과를 상상해 보자. 북한의 농민들은 무상으로 땅을 받은 대신 생산량의 30%를 영원히 국가에 바치는 방식이지만, 남한은 생산량의 30%를 5년만 갖다 내면 영원히 개인 소유가 되는 방식이다. 이 차이는 엄청나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자 자기 땅을 갖게 된 남한 농민들은 이 토지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이것이 바로 김일성이 오판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다. 만일 남한이 전쟁 이전에 토지 개혁을 이뤄 내지 못했다면, 북한군이 내려오기 무섭게 우리 농민들이 인민군을 대대적으로 환영해 아마도 우리는 김일성의 도발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북한에서는 지주들이 땅을 그냥 다 빼앗겼지만, 남한의 지주들은 땅 판 돈으로 공장을 세우거나 산업 분야에 투자하는 등 자본가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게다가 무상 분배 4년 차에 이른 북한 농민들은 여전히 생산량의 30%를 국가에 바쳐야 하고, 이후로도 계속 내야 했다. 즉, 지주의 얼굴이 친일파나 양반 관료에서 공산당으로 바뀌었을 뿐, 그들의 처지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협동 농장 체제로 바뀐 뒤부터 내 땅이라는 개념마저 박탈당해, 북한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원인이 된다.

    500년 사직의 고려를 무너뜨리고 신생국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역시 토지 개혁 하나로 ‘이(성계)밥’을 먹게 된 농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왕실을 단박에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우주는 합리적으로, 예외 없이, 한 치의 빈틈없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일성은 장님 문고리를 잡듯 대충 계산하다가 뜻밖의 화를 입었고, 민심에 버티다 마지못해 시늉만 한 이승만은 뜻밖의 행운을 잡은 것이다.

    - 『1% 인연의 힘』 중에서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336쪽 / 14,800원)
    Posted by 사천짜장
    後記/도서2016. 9. 2. 16:26

    1.

    우리은행 도서이벤트 페이지 북칼럼. 신입사원들이 떠나지 않게 하려면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겠지. 내가 전에 회사들을 전전할 때 뭔가 기록했던 것들이 있는 것 같은데 찾아봐야겠다.

     

    그나저나 안정적인 생활도 이제 곧 끝이구나. 그래도 한 10년은 안정적으로 월급쟁이 생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먹고 사냐. -_-  그동안 너무 게으르게 살았다.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2.

    신입사원들을 떠나지 않게 하려면
  • “어렵사리 뽑아놓으면 뭘 해? 반년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리는걸.” 김 사장은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사직서를 낸 직원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벌써 올해 들어 세 명이 그만두었다. 지난달에 그만둔 직원은 적성에 안 맞는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고 한다. 면접할 때는 뽑아만 주면 정년퇴직까지 있겠다고 말하던 직원들이었다. 연봉이나 복리후생 수준은 동종업계에서 좋은 편인데, 직원들이 1년도 붙어 있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들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조직문화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직원들의 이직,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의 이직으로 인해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해당 인력의 1년 치 연봉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채용과 교육에 투자한 비용, 대체인력 탐색 비용, 업무 차질에 따른 기회손실 비용 등이 포함됩니다.

    직원들의 이직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요? 이직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을 뽑은 다음에서야 유지관리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지관리는 입사지원을 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채용과정에서 지원자가 경험하는 매 순간이 앞으로 이직 여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즉, 첫 단추를 잘 끼워야만 이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첫 단추를 잘 끼우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채용과정은 맞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맞선을 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듯이 채용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원자는 지원자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채용과정에서 회사는 지원자들에게 장점을 부풀리고 단점은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원자에게 헛된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직을 예방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사나 업무의 실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지원자들이 회사에 대해 현실적인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현실적 직장소개, 줄여서 ‘RJP(Realistic Job Preview)’라고 합니다. RJP는 채용결정에 앞서 지원자에게 회사 실정과 업무 내용, 업무환경에 대한 장단점을 가감 없이 알려주는 과정입니다.

    일본의 해충방제회사인 아산테에서는 채용설명회에 입사 2, 3년 차 정도 되는 직원들이 나와서 회사생활의 어려운 점을 적나라하게 발표하는 ‘본심 세미나’라는 것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선배사원들은 “영업하러 나갔다가 개에게 물렸다”, “마루 밑에 기어들어가 벌레나 뱀과 마주쳤다” 등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알려줍니다. 이러한 경험담을 듣고서 많은 지원자들이 입사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정확히 알고서 입사한 사람들은 이직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집니다. 실제로 30~40%에 이르던 이 회사의 신입사원 이직률은 본심 세미나 시행 이후 10%대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채용과정에서 면접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결정해야 합니다. 면접할 때 ‘3의 원칙’을 적용해보십시오. 우선 반드시 3배수 이상의 사람들을 비교한 후 뽑도록 하고, 면접은 적어도 세 번 이상 시행하며, 세 군데 이상의 장소에서 시행해보십시오.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 사람과 만난 장소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면접관으로는 최소한 세 명 이상 참여하도록 하십시오. 지원자의 상사가 될 사람은 물론, 동료나 부하직원이 될 사람을 참여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로, 최종 채용결정을 하기에 앞서 예비선발과정을 잘 활용하십시오. 인턴제도나 수습사원제도의 경우, 통과의례처럼 운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기간을 회사와 지원자 모두 서로 간의 궁합을 엄정하게 확인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아울러 지원자에게 며칠간 실전과 똑같이 근무해보도록 한 다음 입사결정을 하게 하는 ‘체험근무제도’를 운영해보십시오. 이를 통해 회사와 지원자는 짧은 시간 내에 서로를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네 번째로, 채용결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합격자별로 선배사원을 한 명씩 붙여서 밀착 관리하는 방법을 시행하십시오. 채용이 결정된 지원자에게 선배사원을 통해 합격 통보와 오리엔테이션 안내 등을 하게 한다면 훨씬 더 따뜻이 배려해준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선배사원을 멘토로 활용하여 상담과 지도를 하게 하면 신입직원들이 좀 더 빨리 정착하고 오래 머무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신입사원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이직을 예방하는 ‘조기경보제도’를 활용해보십시오. 한 달 또는 분기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부서장이 점심시간이나 티타임을 마련하여, 신입사원의 생각과 고충을 파악하고 조언해주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신입사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신입사원들의 이직 의도를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한다면 이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직원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작업은 직원을 뽑은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순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RJP 시행, 엄격한 면접과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 채용, 예비선발제도 활용, 선배사원 멘토링 제도, 부서장과의 대화 시간 등을 활용한다면 직원들을 좀 더 회사에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세상 모든 CEO가 묻고 싶은 질문들』 중에서
    (IGM세계경영연구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480쪽 / 20,000원)
    Posted by 사천짜장